Marlene Dietrich * Lili Marleen
마를렌 디트리히 - 릴리 마렌
(한스 라이프 Hans Leip 작시 / 노르베르트 슐체Nobert Schultze 곡)
Vor der Kaserne, vor dem grossen Tor,
Stand eine Laterne und
steht sie noch davor.
So wollen wir uns wiedersehn,
Bei der Laterne wolln wir stehn,
Wie einst Lilli Marleen,
wie einst Lilli Marleen.
병영 앞에, 커다란 정문 앞에,
가로등이 하나 밝혀져 있고
그녀는 여전히 그 앞에 서 있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고자 하네,
가로등 옆에서 우리는 서 있고자 하네,
언젠가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언젠가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Unsre beiden Schatten,
sie sehn wie einer aus,
Dass wir so lieb uns hatten,
dass sah man gleich daraus.
Und alle Leute wolln es sehn,
Dass wir bei der Laterne stehn,
Wie einst Lillli Marleen,
wie einst Lilli Marleen.
우리 둘의 그림자가 마치 하나처럼 보이네,
우리가 서로 너무도 사랑한다는
걸 모두가 금방 알아차렸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보려고 했네,
우리가 가로등 옆에 서 있는 모습을,
언젠가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언젠가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Schon rief der Posten: "Si
blasen Zapfenstreich!
Es kann drei Tage kosten!" --
" Kamerad, ich komm ja gleich!"
Da sagten wir auf Wiedersehn,
Wie gerne wollt ich mit dir gehn,
Mit dir, Lilli Marleen,
mit dir, Lilli Marleen.
보초병이 소리쳤네: "소등나팔이 울려!
(안 들어오면) 3일 영창행일지도 몰라!!"
- "전우여, 곧 돌아올게!"
우리는 작별인사를 했네,
내가 그대와 떠나길 얼마나 원했던가,
릴리 마를렌 그대와, 릴리 마를렌 그대와.
Deine Schritte kennt sie,
deinen zieren Gang.
Alle Abend brennt sie,
mich vergass sie lang.
Und sollte mir ein Leids geschehn,
Wer wird bei der Laterne stehn,
Wie einst Lilli Marleen,
wie einst Lilli Marleen?
그녀는 그대의 발걸음을 아네,
그대의 부드러운 발걸음을.
매일 저녁 그녀는 불타네,
그녀는 오래전에 나를 잊었네.
그리고 나는 고통을 느껴야 했네,
가로등 옆에 누가 서 있을 것인가?
언젠가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언젠가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Aus dem stillen Raume,
aus der Erde Grund,
Hebt mich wie im Traume
dein verliebter Mund.
Wenn sich die spaeten Nebel drehn,
Werd ich bei der Laterne stehn,
Wie einst Lilli Marleen,
wie einst Lilli Marleen.
사랑에 빠진 너의 입은 꿈을 꾸듯,
조용한 공간에서, 땅바닥에서 나를 들어 올리네.
늦은 안개가 방향을 돌린다고 해도,
나는 가로등 옆에 서 있을 것이네,
언젠가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언젠가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Marlene Dietrich 마를렌 디트리히 (1901~1992) 독일 출생.
1930년대와 1940년, 독일 출신의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는 최고의 '팜므파탈'
여주인공 역을 통해 절정의 인기를 누린 배우다. 막스 라인하르트 연극학교 졸업을
19세에 졸업한 '마를렌 디트리히'는 "작은 나폴레옹"
(So sind die Manner, The Little Napoleon, 독일, 1923)으로 데뷔를 했으며
그 후로도 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던 '마를렌 디트리히',
부산 영화의 전당 '시네마테크'에서 2014년 4월 30일부터 5월 18일까지
회고전을 열만큼 21세기에도 상당히 영향력을 인정받는 미국인 감독
'조셉 폰 스턴버그'(Josef von Sternberg1894~1969)를 만나면서 1930년에 연출한
'푸른 천사'(The Blue Angel,)를 통해 저속하고 불량스러면서도
또한 관능적이고 매력적인 외모로, 만나는 남자마다 파멸시켜버리는
가수 '롤라 롤라' 역으로 '팜므파탈' 주인공을 맡으면서 그녀의 진가는 드러나기 시작하고
이 영화 한 편으로 '마를렌 디트리히'는 '페르소나'적인 가면 쓴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었다는데 이 영화의 성공으로 '스턴버그'감독과 함께
영화의 본 고장 '할리우드'로 진출, '게리 쿠퍼'(Gary Cooper)를 남자 주인공으로
'모로코'(Morocco, 미국, 1930)라는 영화에 출연하여 그녀의 관능미가 또다시 빛을
발휘하며 미국 영화 시장에서도 존재를 인정받게 되었고 그녀의 영화 생애 딱 한번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게 되는 영광도 맛보았으며 계속해서 "상하이 익스프레스"
(Shanghai Express, 1932) "블론드 비너스" (Blonde Venus, 1932)를 '조셉 폰 스턴버그'
감독의 연출을 통해 '마를렌'의 뛰어난 연기력을 꽃피우고 빛나게 해 준 영화를 만들게 된다.
그 후에도 "불명예" (Dishonored, 1931), "진홍의 여왕" (The Scarlet Empress, 1934),
"악마는 여자다" (The Devil Is a Woman, 1935)를 통해 '마를렌'은 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세계적인 스타가 된 '마를렌 디트리히'에게 히틀러와 나치의 구애를 하면서 나치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영화에 출연해 줄 것을 요청받게 된다. 하지만 이를 거절한 뒤
미국으로 망명의 길에 오르게 되었고 독일 국민들에게는 오랫동안 '변절자', '악녀', 등
미움의 대상이 되어 2차 대전이 끝난 한참 뒤인 1960년에 '마를렌 디트리히'가 베를린에
공연차 갔을 때 독일 국민들로부터 거친 비난과 살해 협박, 을 받기도 했다.
1950년대 이후부터 그녀의 인기는 다소 주춤하면서 예전의 명성에는 못 미치지만
'빌리 와일더'(Billy Wilder) 감독 연출한 "정부" (Witness for the Prosecution, 1957)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1958년 '오손 웰즈'(Orson Welles) 감독이
연출한 "악의 손길"(Touch of Evil,)에서는 늙고 타락한 여인으로 단역처럼
짧은 역할을 맡았지만 그녀의 등장에 영화를 본 관객들과 팬들은 많은 박수를 보내며
여전히 그녀를 사랑해 주며 관심을 보내주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1974년 호주 공연 때 무대 장치에서 떨어지면서
허벅지뼈가 회복 불가능할 만큼 크게 망가져서 이후로 파리 몽테뉴에 있는 아파트에서
매일을 침대에 누워 보내야만 했으니 그녀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그래서인지
그녀는 사람을 가려 가면서 만났고 그녀의 곁에 올 수 있는 사람은 가족들 외에
'마를렌' 그녀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만 가능했다고 한다.
말년을 외롭고 슬프게 보내던 그녀는 1992년 심부전증으로 파리, 그녀의 아파트에서
90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녀의 유언에 의해 그녀가 태어난 베를린에 일부의 독일 국민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그녀의 소망대로 묻히게 되었다.
'릴리 마렌' (Lili Marleen), 이 곡의 탄생은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시에 막 입문한
젊은 사관후보생인 '한스 라이프'(Hans Leip)가 자신의 부대에서 보초를 서고 있을 때,
그날따라 안개가 잔뜩 낀 부대 막사의 길 건너편에 가로등 불빛에 수년 전 어느 미술 화랑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던 '마를린'을 발견한다. 그녀는 간호사로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군 병원으로 가던 길에 한 때 사랑에 빠졌던 '한스'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주었던 것이다.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한스 라이프'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현재 자신과 사귀고 있던
'릴리'와 깊은 이별의 포옹을 하며 그녀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기억하던 차였다.
잠시 먼발치에서 보았던 첫사랑 '마를렌',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눈물로 보내주었던 사랑스러운 '릴리',
'한스 라이프'는 이 두 여인을 생각하며 1차 세계 대전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 중의 하나인
러시아의 전장으로 배속받게 되었으며 그 후 다시는 '릴리'도 '마를렌'도 영원히 만나지 못하였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 당시 안갯속에서 꿈결처럼 느껴졌던 그날을
기억하며 두 여인을 향한 아쉬움을 시로 쓴 '젊은 "초병의 노래"를 자신의 시집 속에 넣어 두었다.
1938년 당시 독일에서 유명한 작곡가였던 '노르베르트 슐체'(Nobert Schultze)가
'한스 라이프'의 '초병의 노래' 시를 읽고 곡을 붙인 후 "릴리 마를린"이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만들어서 평소 교분이 있던 테너 가수 '얀 바 에른'에게 주었지만
단조로운 군가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슐체'는 그 당시 나이트클럽에서 노래하며 이름이 알려진 '랄레 안데스 센' (Lale Andersen)에게
'릴리 마렌'을 주었는데 금발에 어울리는 외모와 샹송 가수로서 매력적인 음성을 가진 '랄레'는 이 노래를
아주 좋아하며 1939년 '엘 렉트 롤라' 레코드사를 통해 음반을 제작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그녀의 생각만큼 당시의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고
발매한 음반의 판매량도 미미해서 조용히 묻히고 사람들이 기억조차 하지 않았다.
1941년 독일군의 침략으로 유고슬라비아를 공격해 점령을 하게 되었는데
고향을 떠나 타국에 오래 동안 머물게 될 독일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음악을 들려주려고 독일군 병사가 레코드 가게를 뒤적이다가
아주 우연히 '릴리 마렌' 레코드를 가져와서 베오그라드 라디오 병영 방송을 통해
'릴리 마렌'을 들려주었고 이 노래는 독일군이나 연합군 모두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이 노래가 나올 저녁 무렵에는 온 전선이 고요했다고 한다.
당시 나치의 선전부 장관 '괴벨스'는 이 노래를 부른 '랄레 안데르센'을 반나치주의자이며
병사들의 전쟁의지를 약화시킨다면서 이 노래를 방송하지 못하게 했지만 원체 병사들이
빗발치는 항의에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다시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때 연합군 측에서 이 노래를 당시에 인기 배우이며 독일에서 망명한 '마를렌 디트리히'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행진 풍이였던 이 노래를 애조 짙은 풍으로 편곡을 하고 과격적으로
성적인 묘사가 강했던 가사 부분을 빼고 독일어에서 영어로 가사를 몇 군데 고쳐서 당시 독일군에 비해
물자 사정이 좋았던 연합군은 독일보다 성능이 훨씬 좋은 스피커로 이 노래를 방송했는데
그야말로 이 노래는 기존의 노래보다 수십 배의 효과를 거둬 훗날 독일 국민들이 독일이
전쟁에 진 것이 '마를렌 디트리히'가 부른 노래 때문에 독일의 청년들이
전쟁의 의지를 상실당해서였다고 그녀를 '악녀'로 전쟁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우기까지 했다 하니 이 노래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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